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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가지고 뚜벅뚜벅~

무조건! 
이란 말은 위험하다. 어떤 목적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달려드는 것... 은 위험하다. 뉴스를 보면 돈을 많이 준다고  위험한 일을 해서 목숨을 잃고 가진 돈은 모두 잃는 안 좋은 일도 많지 않은가!  아무리 나의 목적을 이루게 해 준다 해도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얘기도 많지만 그 감정을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성숙의 척도다. 
 
요즘 질문이 있었다. 비판하는 언론사는 아예 안본다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런데 언론사가 있는 이유는  사회문제를 알리고 비판해서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가는 것인데 비판하지 않는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비판하지 않는 언론사는 기사가 아니라 수필이 되지 아닐까. 
 
문제는 비판이 상대에 대한 조롱을 위한 것이라는 데서 끝난다는 것이다. 비판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없게 되는 반면교사 역할을 해야 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본질적인 것을 상기시키고, 그 사람의 행태를 나는 하지 않으리.. 또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을 보며 어린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나쁜 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성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정당화하며 그가 가진 것들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도하는 언론사가 있다. 그런 기사를 보며 냉소에 빠지게도 되지만, 그러한 문제에 대한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기사를 보면 계속 비판을 하게 되고, 결국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런 언론사를 무조건 안본다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좋은 말을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 나도 잘못하고 있으니 잘못하고 있는 사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말.. 이 있지만, 모든 것을 좋게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필수적인데 말이다. 또 이런 말들은 내 안에 분노를 억누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잊게 한다.  어쩌면 자기가 당면해야 할 문제가 힘들기 때문에 '난 좋은 생각만 할래'라고 숨어있는 건 아닐까? 
 
몇 번 얘기해봤는데 변하지 않는 조직에 내가 계속 있어야 할까? 이런 비판을 계속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든다. 
나의 생계에 영향을 주는 곳에서 나는 포기하고 나올 수 없을 때도 있다. 조직에서 있던 나오던은 자신의 선택이다.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것은 또다른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나를 조직에서 사람들과 격리시킨다. 나의 정체성은 약해지고 나의 열정은 사그라든다.
 
어디에 있던 변할 수 없는 것은 '나'이다. 나의 생각을 억압하지 않고 고민하는 것, 나에게 다가오는 만남들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며 무엇이 나를 생기 있게 만드는지 구별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_파커 J파머> 책을 읽고 있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 
 
내가 만나는 일들에서 실패하거나 고립감을 느끼게 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비판적이고 단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은밀한 경멸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의견이 들어간 비판이기 때문이다. 나의 힘들었던 경험들을 남이 잘못했을 수 있지만 그런 기억들로 다른 사람들과 툭하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일들이 내 마음의 크기가 자라나는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있어야 하는 곳임을 알게 된다.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해도 정체성에서 나오는 성실함으로 나는 그곳을 조금 더 온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모든 실제적인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했다. 
정말로 가르침은 끝없는 만남인 것이다. 새로운 만남을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성실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피곤하면서 겁나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지위나 역할이라는 간판 뒤에다 나의 자아의식을 감추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동료, 학생, 새로운 생각들이나 우리가 반드시 부닥치게 될 충돌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진다. 

만약 내가 그런 유혹에 굴복한다면 나의 정체성과 성실성은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르치려는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p.58,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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