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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생각을 붙잡다

눈 결정체도 다 다르게 생겼다.


오후에 산책을 하다 오리를 봤다. 개천에 머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고 있는 중인가 보다. 한 마리도 아니고 쪼르르 줄지어 세 마리가 물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귀여운 모습에 웃었다. 어떤 날은 엄마 오리를 줄지어 따라다니는 아기 오리에 감동하여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쪼르르 따라다닐 때가 있었지 생각했다. 오리가 함께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끊임없이 나를 잡아두려는 것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나이 들어가며 부모들은 독립해 가는 자녀에게 그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자녀들을 위해 멀리 떠나보낸다.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시간을 같이 보내려 노력한다. 서로의 품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며 사랑하는 모습은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 외에 사람은 홀로서야 한다. 홀로 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오리가 줄지어 머리를 물에 처박고 먹이를 찾는 행동을 우린 안 한다. 우린 각기 다른 모습으로 먹이를 찾는다. 그 먹이로 가족들을 먹인다. 가족들은 그 먹이를 먹고 사회에 나가 영향력을 준다.

인간은 어떻게 모두 다르게 만들어졌고, 다르게 살아가는가? 신비할 따름이다. 그런데 왜 우린 서로 다른 존재인데, 같아지려고 노력하는가?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절망에 빠지는가? 왜 나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써서라도 나와 같게 만들려 하는가? 같고 다름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의 독특함에 애정을 가지면 좋겠다. 나의 독특함을 찾으면 좋겠다.

생각이 많은 나는 피곤하게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에 대한 책을 찾고,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은 문득 4년 전 읽었던 책을 찾아 새롭게 인간의 존재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

요컨대 인간은 피조물인 동시에 인격체다. 인간은 창조된 인격이다. 어떻게 인간은 피조물인 동시에 인격체일 수가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핵심적인 신비다.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을 의미한다. 반면 인격체가 되었다는 것은 상대적 독립성을 의미한다.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고 말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인격체가 되었다는 것은 네 손가락이 움직여질 때 내가 그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뜻이고 내 입술이 말을 내뱉을 때 내가 그 말을 내뱉는 다는 뜻이다.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진흙이라는 뜻이며(롬 9:21) 인간이 인격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결정으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뜻이다(갈6:7~8).
-개혁주의 인간론, 앤서니후크마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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