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1층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1층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인테리어 업체와 경비 아저씨 소리다.
잘 들어보니, 경비 아저씨는 공사를 9시부터 시작하라는 것 같고, 업체는 더 빨리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업체아저씨의 큰 소리가 난무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경비 아저씨는 체구가 작고 말도 천천히 하신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신다. "9시에 해야 해요."
업체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아파트 규정이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규정을 어기려는 사람에게 안된다고 말하는 수밖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업체 아저씨와 그 소리를 듣고 격양되지 않고 듣고 있는 경비아저씨의 모습이 상반된다.
어서 일을 마치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하는 경비아저씨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모두 옳은 마음이지만 규정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비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야?"
진짜 "헐!" 이다. 경비아저씨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분 아닌가? 경비 아저씨가 아니면 누가 상관하나?
문제가 되었던 '9시'가 되니 잠잠해진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데.. 왜 소리를 높여서 에너지를 뺏겼을까.
나는 그 상황에 있었다면 경비아저씨처럼 담담하지 못하고 같이 싸웠을 수도 있다.
업체 아저씨의 말투에 나를 모욕하는 것 같이 느껴 화냈을지 모른다.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경비 아저씨는 아마도 그 상황을 관망하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들이 많이 경험하면서 성격이 괴팍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넘어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셨을 것 같다.
지난번엔 우리 집에 층간소음 문제로 항의가 들어왔다.
경비아저씨에게 항의를 했나 보다. 밖에 있던 나에게 경비 아저씨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어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떡해요? " 라며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경비아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항의하신 분이 너무 화가 나 있어서 그분의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너무 걱정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화라는 감정은 지나간다는 것을 아셨나 보다. 어떤 행동을 해야 사람의 화가 누그러뜨려지는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이 생각난다. 우리 삶의 시련은 이런 진리를 깨닫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건가보다.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그 말 그대로 기쁘고 좋은 일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죠? 하지만 그게 인생입니다. 1241년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부처님 말씀에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 했습니다. 불가에서 완전이란 없어요. 진정한 완전이란 완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웃고 울 일들이 일어나고 또 지나가고 그렇게 반복해 가는 것일 겁니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라는 말은 그래서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기쁘고 행복한 그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되, 그것이 지나갈 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지금을 살면 됩니다. 힘든 순간에도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루는 겁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는 것이죠.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었을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매이지 마세요. 우리조차도 유구한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입니다(라틴어 수업, 한동일, p.303~304)."
축구선수 손준호는 중국 공안에 10개월동안 감금되었다가 수원 FC로 복귀해 어제 첫 경기를 마쳤다. 그는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자신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어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격했다.
힘든 시간들이 "실패가 아니라 시련" 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시련은 견디어 내면 일상에 더 감사하게 되고.. 견뎌낸 하루하루가 쌓여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몸이 작고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힘든 상황을 잘 견뎌내어, 마침내 상대의 침묵을 만들어내신 경비 아저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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